경제 위기의 징조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하락기에 들어섰다 정도가 아닙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발생하지 않는 위기의 신호가 금융시장에서 발생 중입니다.
최근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회사에서 예금‧적금 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리고 있다는 기사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연 6.5% 정기예금은 기본이고, 연 10% 금리를 적용하는 정기적금 상품도 출시되고 있습니다.
개인이 은행에게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은행은 이 돈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적정 마진을 붙여 대출을 해줍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당연히 예금금리를 낮게 주고, 대출금리는 높게 산정합니다. 그런데 저축은행에서는 6%, 10% 금리를 적용해 예금고객에게 이자를 지불합니다.
기준금리가 많이 올라갔으니 당연히 예적금 금리도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오르고, 예적금 금리 경쟁이 아무리 심해져도 은행에서 10% 예금금리를 주면서 대출로 마진을 보긴 쉽지 않습니다. 현재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5% 수준이며, 신용대출도 6% 정도입니다.
금리 높은 저축은행, 유동성 위기 가능성
연말에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예정돼 있으니, 선제적으로 예적금 금리를 올려 고객을 확보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설명입니다. 은행이 이렇게까지 고금리를 내세워 예적금 상품을 파는 건 현금이 부족하다는 신호입니다. 돈이 없어서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으니 무리해서 돈을 쌓아두려는 겁니다.
개인 입장에선 이래나 저래나 이자를 많이 주니 상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금융시장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몇몇 저축은행이 무너지고,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합니다.
◈ 레고랜드 사태, 경제 위기로?
경제 뉴스에 관심 있는 분들은 ‘레고랜드 사태’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레고랜드 사태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블랙스완’ 같은 일입니다. 블랙스완은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 예상치 못한 경제 위기 상황이 왔을 때 쓰입니다.
레고랜드 사태를 정말 간단히 설명해보겠습니다. 레고랜드는 강원도 춘천에 조성된 테마파크인데, 워낙 대규모로 조성되다 보니 수천억원의 예산이 필요했습니다. 강원도 자체 예산만으로 충당하기엔 너무 큰 돈이었기에 민간의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강원도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2050억원의 채권을 발행해 10개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왔습니다. 채권은 내가 보증할 테니 돈을 빌려달라고 발행하는 증서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여기서 ‘나’는 강원도가 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권은 국가가 발행하는 국채와 같은 신용도를 부여받기 때문에 시장에선 가장 신뢰하는 채권이죠.
◈ 국채의 신뢰가 깨졌다
그런데 국채와 같은 신용등급의 이 채권을 강원도가 못 갚겠다고 폭탄발언을 했습니다. 디폴트, 즉 채무 불이행을 선언해버린 것이죠. 강원도가 디폴트를 선언한 배경에 대해서는 경제적, 정치적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제 위기의 징조를 보고 있는 것이니까요.
국채는 국가가 망하지 않는 이상 돌려 받을 수 있다고 시장에서 믿는 돈에 대한 증서입니다. 그런데 이번 레고사태를 통해 국채도 돌려 받지 못할 수 있구나, 한국 경제가 망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을 금융시장이 갖게 됐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예상 못한 사건입니다.
당장 증권사 부도설도 돌았습니다. 레고랜드에 돈을 많이 넣었던 증권사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찌라시가 파다했습니다. 금융당국은 “근거 없는 지라시를 유포하면 강력 조치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시장의 불안은 커져가고 있습니다.
부동산 폭락, 이제 시작이다
이와는 별개로 부동산 시장도 얼어 붙고 있습니다. 올초까지 무섭게 상승하던 부동산 시장이 급랭 중입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평소의 8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주택 가격은 급락 중이고, 미분양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집값이 하락하자 대출을 일으켜 개발 사업을 하려고 했던 시행사와 건설사가 위험해졌습니다. 작년만 해도 수익성이 좋았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미분양 사업지가 되고, 사업성이 안 보이는 것이죠. 불과 1년 만에 말입니다.
실제로 유동성 문제 때문에 부도가 난 건설사도 나왔습니다. 충남 지역 내 중견급 건설사 우석건설이 지난달 어음을 막지 못해 1차 부도 처리됐습니다. 충주 첨단산업단지 인근에 아파트 건설을 진행하던 현장은 내년 9월 완공 예정이었지만, 공사가 전면 중단됐습니다. 이미 분양을 통해 계약까지 다 마쳤는데, 계약자 274명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이는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일입니다. 은행과 증권사가 건설사에 돈을 빌려 주지 않으니 단기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겁니다. 어렵게 돈을 빌려도 10%, 20%대 금리를 요구합니다. 이 때문에 돈을 구하지 못하는 건설사들이 줄도산 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 롯데건설, 부도 위기?
심지어 1군 건설사인 롯데건설도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연말에 만기 예정인 채권을 상환할 현금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건설사는 채권을 발행해 돈을 조달하고, 현장 사업이 마무리되면 분양대금으로 이를 갚는데, 갚을 돈이 없다는 겁니다.
금융권에서 돈을 못 구한 롯데건설은 결국 그룹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에서 5000억원을 빌렸습니다. 대기업이 아니고 지역의 중견 건설사였으면 벌써 부도처리 됐을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찌어찌 버티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우석건설, 롯데건설 같은 일을 이 두 회사만 겪고 있을까요? 지방의 수많은 중소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가 현재 진행형입니다. 돈을 못 빌린 건설사는 부도처리되고, 이미 빌린 돈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겁니다.
◈ 건설사 부도, 2금융권 사태로
그런데 그 건설사들은 어디서 돈을 빌렸을까요? 바로 저축은행, 상호금융, 증권사 등입니다. 2020년에서 2022년초까지 기준금리는 제로금리 수준이었습니다. 대출금리가 아주 낮았죠.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은 대출로 돈을 버는데, 주담대 상품 정도로는 돈을 벌기 힘들었죠.
그래서 부동산 PF 사업을 많이했습니다. PF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건설사나 시행사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돈을 빌려주는 겁니다. 이율이 높은데, 올초까지 부동산 시장도 호황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부동산 PF 대출을 해줬습니다.
금융당국에서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비중이 너무 높다고 주의를 줬지만, 은행에서도 이렇게 빨리 부동산 시장이 식을 줄은 몰랐을 겁니다. 건설사가 무너지면 결국 저축은행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상공인 부실대출, 빚폭탄 터진다
워낙 큰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어 잠시 잊고 있지만, 소상공인 대출 문제도 정말 심각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면서 경영이 힘든 소상공인들에게 정부가 정책대출을 퍼줬습니다.
상황이 급하니 담보도 없이, 매출이나 사업능력도 평가하지 않고 무조건 대출을 해준겁니다. 보증은 물론 정부가 섰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기간에 소상공인의 경영 상태가 최악으로 나빠졌고, 빚은 쌓여갔습니다.
페업을 하려고 해도 사업자가 말소되면 당장 대출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영업을 계속한 좀비 소상공인도 많습니다. 대출 만기가 끝나도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소상공인이 워낙 많아서 대출만기를 연장해주고, 심지어 원리금 상환도 유예해주는 조치가 나왔습니다. 이 조치가 나왔을 때 대출만기연장 및 상환유예를 신청한 대출 규모가 120조에서 140조원에 달합니다.
워낙 양이 많다 보니 정부에선 만기연장 조치를 계속 연장해줬습니다. 전 정부에서 4번 연장했고, 이번 정부에서도 최근에 한 번 더 연장했습니다. 만기를 연장해준다고 소상공인이 부채 상환 능력이 생길까요? 단언코 아닙니다. 정부도 그걸 잘 알고 있지만, 100조원이 넘는 부실대출 사태가 터지면 경제가 흔들리기 때문에 계속 만기를 연장해주고 있는 겁니다.
◈ 경제 위기 신호들...
굵직한 사건만 뽑아봐도 이렇습니다. 자잘하게는 3개 이상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의 증가, AAA 신용등급의 한국전력공사 채권의 유찰, 수도권 미분양 급증, 원달러 환율 1400원 돌파 등 경제 위기 신호가 너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건 욕심 아닐까요? 과거에는 하나의 사건만 발생해도 경제 위기급 파급효과가 있는데, 현재 시장은 이 모든 일이 동시에 발생 중입니다.
일각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느끼지는 못하지만, 이미 경제위기는 시작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금리 6% 정기예금에 기뻐할 때가 아닙니다. 진짜 무서운 위기가 찾아 오고 있습니다. 모두들 현금을 모으고, 투자에는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파티는 끝났습니다. 이제 경제 위기에 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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